베트남-4-, 캄란백마, 동보부대(30연대)
내가 근무했던 곳은 처음 파월되어 백마 30연대 8중대 제2소대장으로
중남부지역 캄란지역이었다.
우리연대는 북으로는 나트랑에서 닌호아로 넘어가는 1번국도의 고갯길에서 남쪽 판랑지역 까지를 당당하여 평정작전을 수행했다.
그중 우리2대대는 연대 본부에서 15여km 북쪽의 동바틴에 2개중대(6,7중대), 연대본부 지역에 5중대,
그리고 베트남 동해안 지역을 담당한 미군과 백마사단 지역에 지원되는 모든 전투및 전투근무지원을 담당하는 미군의 군수기기인
캄란베이의 길목을 경계하기위해 우리8중대가 배치되어있었다.
우리중대는 나트랑의 남쪽 900고지대인 동보산에서 캄란베이로 침투하는 베트콩을 막기위해 캄란베이 미군활주로 북쪽끝에 있으면서
매일 밤 예상 침투로에 매복작전을 수행하면서 대대급 이상작전이 있을때는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닌호아의 동생집에서 출발하여 1번국도(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내려오다 나트랑의 102병원지역을 둘러보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디엔칸 지역의 1대대지역,그리고 동바틴의 2대대 지역과 캄란의 연대본부지역을 둘러 보았다.
판랑의 3대대 지역은 생략했다. 사실 3대대지역인 판랑은 1972년까지 베트남 내 한국군 당당지역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정이 잘된 지역이었고,
1972년 맹호사단 지역의 안케페스 전투로 맹호 1개대대가 안케페스에 집중됨으로해서
맹호1대대가 담당하던 지역의 안정을 위해 우리 백마 30연대 3대대가 맹호 1대대 지역으로 이동배치되었었기 때문에
시간도 없고 해서 판랑지역은 보지 않았다
닌호아에서 나트랑으로 내려가는 1번국도변의 농가 모습
1번 고속도로의 모습- 국도 그대로 이면서 명색이 고속도로로 등재되어 있다
닌호아에서 나트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고개를 넘어여 하는데 우리가 있을당시
이고개가 완전장악되지 않아 가끔 베트공의 기습을 받아 인명사고가 많이 나던곳이다.
2-3km내려가면 나트랑과 딘엔칸(백마 1대대 지역)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지금은 그렇게 험한 고개같지 않았다.
여기가 좌로가면 102야전병원이 있던 곳이고 직진하면 디엔칸을 지나
30연대 본부가 있는 캄란으로 가는 1번국도(고속도로)이다
나트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102 야전병원 자리는 위 사진과 아래 사진들에서 보는 봐와같이
고급주택(아마 군 쥐휘관이나 당 간부의 저택아닌가 생각됨)들이 들어서 있고
일부는 그대로 베트남 군부대로 사용되고 있다
병원 정문이 있었던 지역으로 베트남 군이 주둔하고 있다
당시 위병소 앞의 경계초소가 아직 남아 있었다
부대가 있던 지역을 지나
부대가 있던 지역을 지나 우회전하여 나트랑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다
위, 아래 사진들은 나트랑 구 시가지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나트랑 신기가지는 당시 경비행기 활주로가 있던 지역과 그 주변과
특히 예날 나트랑시내 남쪽으로 흐르던 강 남쪽의 농경지 지역에 신도시가 건설되어 나트랑을 세계3대 휴양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트랑 다운타운으로 들어가기전에 우회전하여 디엔 칸으로 들어가는길이다.
그당시에는 농로길에 불과 했는데 지금은 디엔칸에 우리의 농공단지에 해당하는 공장지대가 조성되어
도로도 정비되고 주택도 많이 들어서서 젼혀 모르게 변모했다.
도로 왼쪽변에 있는 나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투쟁을 할때 이지역출신의 유명한 장군의 이름이 붙여진 나무라던데
그 이름을 잊었다
디엔칸은 고대와 중세에 정치 중심지로 우리의 낙안읍성같이 평지에 성벽이 둘러쌓인 그런 고도였다.
위와같이 성문과 일부 성곽이 복원되어 있었다
성벽위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정면 중앙의 산 봉우리가 백마 30연대 1대대가 배치되어있던 대대op이며 대대본부지역이다
위,아래 사진이 복원된 성벽의 일부이다
사진의 죄축상단 골짜기 뒷족산들이 당시 베트콩이 은둔하고 있던지역이라
종종 대대,또는 연대작정을 벌렸던 곳이다
디엔칸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좌측으로 백마 30연대의 심볼명칭인 동보산(900m이상고지군들의산)이 있고
그 남쪽 긑자락을 타고 긴 모래언덕(사구)로 형성된 캄란베이(반도)가 길게 뻗어 있고
그서쪽으로 내해(內海)가 형성되어 있고 그 서쪽으로 1번도로가 북에서남으로 나있다.
바로 그 도로변에 이렇게 넓은 활주로 아닌 활주로 같은 넓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당시 연대, 대대작전을 벌릴때
소위 공중기동작전으로 여기서 헬기에 탑승하여 서쪽 산악지역의 베트콩을 소탕하러 출발하던 지역이다
당시 나는 연대 작전과 작전항공장교로 공중기동헬리곱터을 전투편성하여 병력을 투입및 철수작전을 미군연락장교중령과 같이 수행하였었다
작전시 전과획득 축하 꽃다발을 받고,중앙은 작전 현장에서의 분대원들과 축하
아래좌측사진; 고향이 창원 유들인 할머니 친정 먼일가였던 윤여욱병장, 오른쪽은 나의 전령 김 문수상병
사진위;작전을 마치고 복귀시 분대장들과,중앙과 아래; 작전지역에서 잠시 휴식
사진위; 작전에 투입되는소대원들과, 중아; 지역 민사심리전 작전간 마을어귀에서, 아래사진;1소대장 조기수중위와 연대작전중 작전현장에서
지금도 그 자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고 경비행기 계류장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제일 감회가 생생한 곳이었다.
파월18개월중 소대장 8개월 헬리곱터 운용/통제장교10개월을 했었는데 이 헬기 통제장교임무수행중
작전을 지휘,지원하면서 정말 꼭 죽었어야 할 순간을 5번이나 넘기는 등
나의 파월기간중 가장 보람되면서도 가장 위험했던 기간이었다
덕분에 육군중위로서 미 육군 공로 훈장을 받기도 했었지만...
위 아래 사진들은 우리대대(백마30연대2대대)가 있었던 동바틴 지역으로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일부는 농산물 집하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 동바틴지역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수백만평이상 되어 보이는 망고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여기 망고가 베트남 망고의 주 생산지로 변해 있었다.
소대장을 마치고 연대 헬리곱터 통제/지원장교로 전출하는 환송회식
위 대대장님과 사단인사참모님 ,우측은 연대장 최근식대령님,과 사단장 김영선 장군님
아래좌측은 백마사단 각연대 헬기장교들과 사단 동기생들이 사단참모장님과 함께
우연히도 그 당시 헬기장교들이 다 동기생이었고 애석하게도 이자리에 없는 차병규는 헬기 추락으로 전사했었다.
아울러 백마부대 헬기장교출신 동기생은 한명도 장군이 되지 않았다
연대본부 연병장 남쪽의 황룡산 모습,저산의 좌측(동쪽)이 캄란 다운타운이다
30연대 본부가 있던 캄란의 수진마을 앞 1번도로다.
수진이란 동네이름은 아는사람이 드물었다.안내한 중년남자(한국회사근무)의 부친이 그 이름을 알고 알려 주었다
수진마을 앞 1번도로에서 우회전하여 연대로 들어가던 길 같은데
그 안쪽은 메트남 공군부대가 주둔해 있었고(비행기는 바로 앞의 캄란베이안 비행장에 있고)
그 울타리 밖은 농경지로 변해 있었다.
연연대 헬리곱터장교를 할때의 모습 ,미군헬기 조종사들과함께 캄란베이 공군기지에서 주유를 하면서...
사진위;gun-ship(코브라)-무장헬기 조종사들, 중앙;건쉽에 오른모습, 아래;주유중에 , 아래우측;위문공연단수송간에
이당시 평소 연대에는 미군 헬리곱터 대대로 부터 하루에 UH-1H헬기 2~3대를 지원받아 전투근무지원및 병력수송용으로 사용하고
작전시에는 작전규모에 따라 헬기20~30여대를 지원받아 병력을 작전지역으로 공중기동시켜 투입및 철수작전을 지휘통제하고
작전기간중에는 전투식량과 물등 보급품을 작전지역에 떨어뜨려 주는 임무등을 수행했다
위는 사무실이자 숙소 앞에서 나와 함께 근무하던 헬기통제사병들
중아좌측; 헬기안에서 임무수행중,오른쪽; 사무실겸 침실내부
아래사진은 연대연병장에서 주월사령관 영접,-
사진뒤의 기둥두개가 서있는 차고같은 막사가 우리팀의 내무반이자 사무실이며 연대내에서 유일한 지상건물이다
소위 접근 금지 표시판과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내가 있었던 연병장 가의 울타리가 내 숙소 위치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연대본부에서 판랑 쪽으로4-5km내려가면 공동뵤지가 있었기에 베트남의 공동묘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것 같아
찾았더니 역시 그자리에 있었으며, 그때보다 더 화려하고 크게 조성되어있었으며,
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조상숭배정신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햏다
당시 연대 휴양소가 있었던 수진 해안가를 찾았으나 그 아름다운 해안은 완전히 없어지고
조그만 조선소와 새우 양식장으로 변해있었다
한국에도 베트남산 새우가 많이 수입되고 있는데 베트남의 해안가에 바다새우 양식장이 매우 많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건너편이 캄란베이의 무역항이고 당시 파월장병들을 실어나르던 배 업셔호가 정박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 해군이 배치되어 일체의 접근이 금지되어 었었다
당시 캄란베이의모습-파월되어 오는 장병들이 하선하는 모습
사진의 우측이 세우양식장이다 당시에는 야자수가 드리워진 잔잔하고 수심이 얕은 정말 좋은 해수욕장이었다
수진마을앞 해안에서 북족을 바라본 전경, 정말 아름다웠던 남국의 야자수가 늘어졌던 해안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진 마을에서 동쪽으로 우회전하여 캄란베이로 들어가는길
집들이 들어서고 해서 영 다른 풍경이었다
입구부터 개발이되어 군인가족들의 마을로 변해 있었다.
베이 안에는 나트랑공항과 베트남 공군, 그리고 해군 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캄란베이로 들어가는 다리앞에서 바라본 수진마을과 연대 본부지역, 뒤 산이 연대 앞의 황룡산이다
바닷가의 판자촌 같은것이 새우 양식장 도구등을 보관한 움막이다.
해안가가 전부 새우 양시장이다
위모습을 망원렌즈로 당겨본 모습 들
캄란베이로 들어가는 다리와 엣날의 표지석
베이 다리앞에서 북족으로 바라본 전경
베이 다리앞에서 북족으로 바라본 전경-먼 뒷산이 동보산, 오른쪽이 캄란베이
뒤쪽약간 솟은 봉우리가 캄란베이를 경계하기위해 배치되어있던 우리8중대 위치다
베이 남쪽을 바라본 사진-캄랂항구다-모든물자가 저항으로 들어왔다
베이항구를 거쳐 한바퀴 둘러보고 싶었는데해군부대로 되어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캄란항의 그 넓은 지역을 베트남해군이 장악해서 주택사업, 기타 개발사업을 군부대 지휘관이 총괄해서
돈이 그쪽으로 쏠리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군부가 정치일선에 나서는 북한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싶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베이 남쪽 우리1개소대가 있던지역은 가보지 못하고 방햐을 베이 북쪽 중대 본부쪽으로향하는데
여기도 공군이 장악하고 캄란 비행장도 공군통제하에 들어 있어 가 볼 수가 없었다
나트랑 비행장 가기전에 공군부대내에 세위진 전승기념비
철조망 넘어로 우리중대가 있던 고지를 찍었다.발견되면 앞수되겠지만 별 감시가 없었다
조그만 고지 모습과 고지 중간에 교통호자국과 센드백 같은것이 보이기도 했다
위사진 고지의 그당시 모습
멘위 사진; 진지공사를 하는 모습-동북 방향으로 보고 촬영-뒤가 동지나해이다
중아좌측사진;중대 관축소와 상황실, 중대장실이 있던 관마대-박노숙24기 ,양인목중대장22기
아래사진;진지공사간 나의모습과 길영래 부중대장과 육상거북이를 보면서-유상거북을 처음 봤다
중대 기지방어 철조망은 4중,5중으로 쳐져 있었고 울타리밖이 남지나해인데
지금은 그 북쪽해안을 리죠트 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먼저 해안으로 나가는 도로는 완성되어 있었다
해안가로 내려가는 데크와 주차장은 만들어져 있었다.세부리죠트개발사업은 자금확보가 안됬단다.
집사람이 디카로 찍어 주어 내 소대장 시절과 비교할 수 있는 그림이 있어 다행이있다
해안에서 나트랑(북쪽)을 향해 찍었다
사진 좌측이 동보산이고 중앙이 나트랑이며 동쪽이 빈펄 리죠트가 있는 섬이다
반대로 남쪽 ,비행장이 있는 베이쪽 해안 -얼마나 넓고 긴 해안선인가!! 정말 푸르고 깨끗한 동지나해안이다
리죠트를 조성하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위죄측; 당시 이해안에서 소대선임하사, 분대장, 전령(당번)과 함께,
위우측;분대장들과 해안에서 즐기던 한때,
중앙; 내갈비 폼나는지 모르겠네
아래; 소대원들과 동지나해를 배경으로-사진뒤 섬이 나트랑 동쪽 섬으로 지금은 빈펄(VIN PEARL)리죠트가 들어 있는 섬이다
아래 우측; 동보 17호작전(연대작전) 계획에대한 중대 작전계획을 브리핑하는 모습-휴양을 하면서 다음작전을 준비하는 낭만이 있었다
소대원들과 이 해안에서 휴양하며 체력과 전투력을 축적하던 모습
예날 그때는 캄란공항이라 했는데 지금은 나트랑(나짱)공항이라 명명하며 ,
나트랑에서 공항까지는 도로가 편도2차로 왕복4차로로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게3대 휴양지라 할 나트랑으로 바로 가기위해 해안을 따라 새로 돌로를 건설해 놓았다.
저산이 바로 동보산이다.
나트랑으로 가지 않고 캄베이 내해에 있는 횟집에서 베트남식 회를 중심으로 중식을 했다
좌측이 베트남 미포조선에 근무하는 동생, 다음이 중학교 교장선생으로 정년퇴직을 한 형님
가운데가 나 그옆이 집사람 다음이 여고 화학서냇을 하고 정년퇴직을 한 형수님 .우측이 음대출신인 제수씨
점심을 하고는 다시 캄란베이 나트랑 비행장앞을 지나 나트랑 신도시 입구의 빈펄 리조트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최근에 가장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고속화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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