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패인 여행-2-세비아관광
●3일차,3월25일; 안탈루시아주도 세비아
아침 7시 리스보아를 출발하여 세비아로 향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국토가 넓은 504,700㎦ 로 북쪽의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경게를 이루고 있고
17개의 주 3개의 자치시 중에서 안탈루시아주가 제일 크다.
15,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기원전 210년경 부터 4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그후 서로마 제국이 쇄퇴하자 5세기경 서고트,수에니, 반달족등 게르만족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후 711년 이슬람 우다이야 왕조의 라티크 이븐지야드 장군이 이끄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연합군이
지브랄탈 해협을 건거 피레네 산맥이남을 정복함으로서781년동안 무슬림의 지배를 받는다.
무슬림 지배하에서도 피레네 산맥의 산간지방,에서 겨우 독립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끊임없는 항거로 1492년 무슬림을 지중해 밖으로 몰아내고 이스파아냐로 불리다가 스페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1492년 이사벨 여왕으로 부터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미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후 남 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 맥시코,미 서부, 필립핀,마리아나 제도까지 점령하여 식민지로 두게됨으로서 세계 최 강국으로등장한다.
16세기후반(1580년)부터 17세기 까지 포르투칼,이테리남부,독일, 벨기에,네델란드,룩셈부르크,
심지어 북 아프리카에가지 영향력을 미쳐 해가 지지 않은 제국으로 굴림하지만
영국과 오스만제국의 급 부상과 로마 카톨릭의 부패로 재정적 악화 속에서도
스페인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전역에 퍼져있던 문제에 개입하면서 급격한 국력약화를 가져왔으며,
18세기부터 프랑스에 탄생한 부르봉 왕가와의 왕위계승전쟁으로 국력이 완전 쇠퇴 되었다.
1795년에는 프랑스 제1공화국 나폴레옹군대와의 전쟁에서 페하여 종속국으로 전락되기도 했다.
1814년 페르디난드7세가 나폴레옹 군대를 몰아내고 왕으로 복귀하면서 완전독립을 하게되지만
1936년부너1939년까지 내전으로 또한번 홍역을 치루고 이후프라코 총통체제하에 지내다가
최근에야 완전 공화정으로 자리를 잡은 복잡한 수난의 역사를 안고 있는 나라다.
포르투칼 보스니아에서 스페인의 세비아로 이동하는 길은 잘 정비된 고속화 도로로서 한적하고 쾌적했다
길 양 편에 무한히 펼쳐진 대평원은 동유럽의 평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도 다고 지평선이고 그 들판에는 소나무와 콜크나무가 꼭 올리브 농장같이 보였으며 그 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것을
보고 역시 세계콜크 생산의 절반이 이땅에서 나온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콜크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만드는데 나무의 아랫부분 껍질을 벗기고
한번 벗긴나무는 한 5년 지나야 다시 벗길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소나무이다.
꼭 정원수같이 둥글게 다듬어 져 있는데 이것은 다음은게 아니고 그의 저절로 이렇게 자란단다. 계속 가지치기를 해서 아랫부분은 곧게 자라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가이드도 잘 모르고 오로지 솔방울 채취라 하는데 납득이 되지않았지만 더 이상 알아 보지 못했다
총 5시간 반 정도 달리는데 여기 차량들은 일정시간을 계속 주행하고 나면 30분은 쉬어야 하며 이는 자동 입력이 되고
이를 위반하면 운전자에게 벌금이 부과 된단다.
그래서 2시간 조금더 운행하고 화장실도 갈겸, 휴게소에서 내려 휴식을 했다.
이 휴게소 에서는 와이파이가 무료로 터져서 여기서 쉬면서 한국으로 보이스 톡도 하고 해서 즐건운 휴식시간이 되었다
벌써 더운지 졸리는 눈으로 하품을 해대는 강아지가 귀엽다
스페인 남서부에 있는 스페인에서 면적이 제일넓은 안탈루시아 주의 주도인 세비아로 들어 섰다.
날씨가 워낙 맑고 청명하여 평원의 들판 끝이 바다 같이 보이고 시계가 100km는 되는 듯 했다
세비아의 지도상 지명을 보면 sevilla로 표기되어 있는데 ll 발음은 생략한다네.
그래서 출발전에 세비아가 어디인지 지도로 찾아 보다가 포기 했었던 기억이 난다
세비아 시 외곽의 모습 이제 시내로 들어 간다
세비아에 도착하자 마자 현지식으로 점심을 했다.
식사는 육류와 해물로된 철판구이가 나왔다.
생 소고기가 있고 해서 욕심을 내어 고기믈 많이 좀 들어서 요리사가 구워주는 철판구이를 받아들고는 난감했다.
왜냐하면 소고기가 질겨서 꼭 유격훈련을 받을때 몇 끼니를 굶었을때 허기를 면하기 위해 군화가죽을 찢어 씹는 그런 기분이었다.
결국 소고기는 먹는 것을 포기하고 닭고기와 새우등으로 적당히 요기를 했다
보기에는 너무 거를싸하게 보인다마는 ....
점심식사를 하고는 강변을 따라 산책하며 황금탑 앞까지 걸었다.
세비아 도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과달 끼비르강가의 공원을 따라 황금탑 앞까지 걸어면서 관광했다.
날씨와 조경 건물들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워 다들 함성연발이었다
아래에 그 풍경을 올린다
사진 찍기에 바빠 얼마를 걸었는지 모르겠다.다시한번 간다면 석양에 조용히 노을과 더불어 벗하며 걷고 싶은 곳이었다.
주변도 말끔히 정리되고 도시도 깨끗하고 모든게 상당한 생활수준임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투우사가 바라보는 건너편 건물이 왈립 투우장이다
스페인 하면 투우와 플라밍고 이리라.
그러나 요즘은 세비아에서는 투우를 일요일에만 한단다. 옛날만큼 그렇게 하지 않는것도 이해가 간다.
사진을 찍거나 찍히기를 싫어하는 우리집사람도 오늘 여기서는 바쁘다 넘 자주 셔트를 누른다.
역시 사람은 아름답고 즐러운 모습앞에서는 순수해 지고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보여주는가 보다.
편안하고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남녀 노소 가 없다.
장만형의 부부는 늘 보아도 금술이 좋아 보인다 특히나 사모님이 팔장을 잘 끼는 것을 보면 형이 무척이나 잘 해 주나 보다
본받을 만하다.
황금탑 앞에서 역시 포즈를 취하게에 얼런 셔트를 눌렀다.
황금탑은 황금이 얼마나 들어갔기에 황금탑이라 했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지붕을 황금색 도자기로 덮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황금탑은 과달키비르 강가의 망루로서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군사적 목적에 쓰였던 곳이다.
여기서 바람을 쏘였고 이제 다시 골목길을 거쳐 바로 앞에 있는 세비아 대 성당으로 갔다
●세비아 대 성당 외부 주변가
세비아 대 성당은 1401년에 시작하여 110년걸쳐 공사를 하고 1510년에 완공한 사원으로서
이슬람과 케토릭의 양면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2,13세기에는 이슬람식이고 15,16세기에는 르네쌍스식으로 지어졌다
교회라고 하면 성당은 장소를 지칭하고 개신교에서는 개신교 자체를 교회라고 통칭하나 보다.
스페인에서는 교회를 이글레시아라고 하고 큰성당은 법정으로서 바실리카 라고 하며 주교가 계시는 곳은 까테뜨라리 라고 부른단다.
세비아 대성당은 주교가 계시는 성당이란다.
●세비아 대성당 내부와 35층의 첨탑위에서 본 시내모습
여기 세비아 대성당안에 콜럼버스의 무덤이 있다.
위 사진은 스페인의 4대왕국의 국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장례행열을 하는 모습이다
바로 아래 사진이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왜 코럼버스의 무덥이 여기 세비아 대 성당안에 있느냐 하는것도 관심사 였다.
그것은 스페인이 711년 부터 800여년간 무어인(아랍족)의 지배를 받을 때 스페인 북부 피네네 산맥의 산악을 중심으로 국토회복운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었다가 최종적으로 아랍인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 것이 1492년 그라나다의 아랍족을 몰아낸 것이었다.
이시기에 이태리 사람인 콜럼버스가 포르투칼 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했으나
포르투칼왕이 거절하고 바스코 다가마을 지원하게된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이사벨여왕이 스페인에서 무어인을 겨의다 몰아 낼 즈음 이사벨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사벨 여왕의 지원으로 여기 세비아의 과달키비르 강에서 출항식을 갖고 출항하여 1492년 아메리카 신대룩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을 계기로 스페인은 급작스럽게 세계 최강의 강대국으로 발 돋움 하게 되었으므로 여기 대성당에 그의 무덤이 있게 된것이다
이 탑이 성당옆에 붙어서 서 있는 히랄라 탑이다.
이 탑은 그 높이가 35미터이고 올라가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들 35층의 계단을 올라갔다 온다는게 힘들것 같으니 포기하는데 계단이 아니고 사각형이지만 경사면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한층의 높이가 실제 반층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첨탑으로 올라가는 길을 경사면으로 만든 이유는 그 에날 말을 타고 올라가기 위해서 였다고 하는데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꼭대기 공간을 보아서는 2~3필 이상 올라갈 공간은 아닌것 같았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시내 전경을 조망하는 것도 좋지만 대성당의 아름다운 지붕과 벽들의 조각,그리고 성당내부 정원등을 볼 수 있다.
꼭데기 종탑의 모습
정교하고 아름다운 성당과 도시의 모습을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으니 !
●유대인 거리와 스페인 광장
대성당에서 나오면 대성당 주변과 중앙광장등을 다니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차 구경만 하고 걸어서 유대인 거리를 보고 뻐스를 이용하여 중앙광장으로 갔다.
순찰을 돌고 있는 슨마경찰들
여기는 과거 유대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스페인 중앙광장
스페인 중앙광장이라 해서 수도 마드리드에나 있는 광장 아닐까 해서 물어 보았더니 큰 도시마다 중앙광장을 스페인 광장이라고도 한단다.
세비아의 중앙광장은 다른 도시, 다른나라의 도시와는 좀 다른 멋진 광장이다
꼭 로마 베드로 성당앞을 축소 해 놓은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건축미도 너무 아름답다
여기에 결혼 웨딩촬영,가족행사촬영등 많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행랑 복도 아래에 한사람이 누워서 쉬게 좋을 만큼의 개인침대 같이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서 쉬거나 자거나 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부분 부분을 나누어 담아보면 이렇게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에서 본 광장은 물론 영국의 트라팔과 광장도 이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한 앵글에 다 담을 수 없어서 구분 촬영하여 아래사진과 같이 합성한 파노라마를 만들어 보았는데 전체를 한눈에 볼 수는 있어도
그 본래의 원형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곡선미가 사라져서 들 아름답게 보인다.
이어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집시들의 음악과 무용인 프라밍고를 관람했다
매혹적인 몸직과 열정적인 표정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춤이다.구두 바닥에 금속을 붙여 구르고 찍듯히 하여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내는 그 음의 고저 장단이 매우 매혹적이었다
약 한시간 반 정도의 공연이었다 비용은 한사람당 70유로 씩 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와서 8시 반 경에 저녁을 먹었는데 서울로 치면 9시 반에 먹는 저녁이다.
이곳 스페인은 이렇게 저녁을 늦게 먹는다고 한다.
출발일로 부터는 3일 반이 지났지만 실제는 만2일 풀로 구경했다.
-2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