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카파도키아~지중해의 휴양도시 안탈야 까지
카파도키아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 지명.
타우루스 산맥 북쪽의 고원에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자 속국이며 나중에는 로마의 속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6세기의 문헌이다.
그당시 카파도키아에서는 봉건세력이 페르시아 사트라프(총독)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지역은 로마에 점령당할 때까지 페르시아의 성격을 유지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카파도키아를 우회했지만, 페르디카스 장군이 이끄는 부대를 이 지역으로 파견했다(BC 322).
카파도키아는 BC 190년에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가 승리한 뒤 이 지역은 BC 1세기에 폰투스 왕국과 아르메니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로마에 충성을 바쳤다.
17년에 티베리우스가 이 지역을 병합할 때까지 로마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던 카파도키아는 타우루스 산맥의 전략적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에 해당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파도키아는 실크 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대규모 기암 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다
.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수억년 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쓰였을 만큼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터키 기독교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카파토키아의 괴르메
괴르메; 보일듯 보이지 않는곳이란 뜻
추숙한 호텔--너무 늦게 도착하여 빔풀고 발댄스 구경 갔다
발리덴스
괴르메의 버섯바위 마을
화산재와 석회석이 썩인 응회암이 수억년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모습-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연경관
괴르메의 버섯바위 동굴들
괴르메 투숙 호텔 마을을 배경으로 인정샷
관광객이 타는 열기구 1인 240유로-한30분타고...넘 비싸다
투숙했던 호텔 모습
괴레뫼 야외박물관
성바실리우스 교회
이슬람의 침공으로 지하로 숨어 들어간 사원,또안 승려들의 수련공간
엘마 교회
이하 파사바 계곡의 버섯 바위 모습들
우치하사르 계곡-고대인들이 응회암을 파고 만든 고대 아파트
지하도시 입구
7세기이슬람의 지배로 도피한 기독교인들의 생활공간(주거지역)--지하4층까지 있으며 지하 공간에 동물사육장도 있었다
1964년 한 놈부에 의해 발견-전체약600여군데나 있단다
나브세히르-악사라이 경유 콘야로 가는 길에 있는 "케르반 사라이"에서 휴식
실크로드를 이용하는 대상들의 숙박지역으로 대상들을 위한 숙박지역은 20~25km정도마다 건설되어 있다.
이는 낙타들의 1일 이동거리를 고려하여 만들어 졌단다
케르반사라이
콘
콘야에 도착
콘야
터키 중서부 내륙의 고원지대도시로서 실크로드 경유지미다.
곤야는 가도 가도 수평선이 보이는 터키의최대 곡창지대로서
구석기이전 인간이 농경사회로 진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야생밀의
발견과 이의 반복생산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원초지역이기도 하다.
콘야는 양의 앞가슴이란 뜻으로 터키에서 이슬람 색갈이 가장 강한지역
투숙한 데데만 호텔
호텔서 내다본 콘야 시가지 야경
지중해로 넘어가는 산맥 --꼭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기분었다
고개 정상에 있는 휴게소
고개를 넘어니 거짓말같이 날씨가 화창하고 매우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며
지중해 연안의 고대 도시 시대로 들어 갔다
시대
터키 남서부 고대 팜필리아의 중심도시와 항구.
원래는 마나브가트 강 어귀 서쪽의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내륙에 위치한다.
아이올리스의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주민들은 그리스어에 속하지 않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했다.
잘 발달된 천연항과 대형선박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2개의 인공항이 있어 팜필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다.
BC 33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되었으며,
BC 190년에는 로도스의 함대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가 이끄는 함대를 이곳에서 격파했다.
BC 1세기에는 실리시아의 해적들이 그들의 대표적인 노예시장으로 삼았다.
1947~66년 터키인들에 의해 발굴된 시데 유적지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큰 갑(岬)에 자리잡고 있다
시대;동로마 제국시의 도시로서 1~5세기경에 가장 번성했던 도시
파괴된 고대 시대 도시의 유적
그당시의 상점 거리
태양신의 신전인 아폴론 신전터에서 폼잡다
시대해안의 모녀
터키의 유명한 석류
현지에서 직접 짜는 석류엑기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시대해안
시대지역 신시가지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원형이 가장 잘 보존
2세기초에 축조된 12000명수용의 원형극장
일행들과 인증샷
원형극장에서 인증샷
정말 그 많은 지진에서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평지에 만들어진 원형극장의 외부모습
안탈야로
시대에서 서쪽으로 약1시간 가면 안탈야다
안탈야(ANTALYA)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도시
터키 남서부 안탈리아 만 연안에 있는 지중해의 항구도시. BC 2세기에 페르가뭄의 왕 아탈루스 2세가 세운 해항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의 후계자 아탈루스 3세가 로마에 유증(遺贈)했다. 사도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선교활동을 위해 안티오크로 떠날 때 바로 이 항구를 이용했다. 3개의 아치로 된 대리석 대문인 '하드리아누스 문'은 130년에 이곳을 방문한 하드리아누스를 기념하여 지어진 것이다. 중세에는 비잔틴의 요새였으며 십자군 원정 때에는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는 군대의 주요승선지였다. 1207년 셀주크 투르크의 통치자 카이 쿠스라우에게 점령되었고, 그후 얼마 안 되어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겸 항구가 되었다. 1391년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드 1세에게 처음으로 점령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으로의 합병은 티무르의 침략으로 야기된 혼란으로 인해 15세기 후반까지 지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오스만 제국의 전후 분할을 위해 이탈리아·프랑스·영국이 맺은 1917년의 3국 협정에서 이탈리아는 안탈리아와 그 배후지의 영유권을 요구했다. 이탈리아 군대가 1919년 이곳을 점령했으나 1921년 7월 투르크의 국민군에게 쫓겨났다.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따뜻한데다가 근처에 고대 유적지가 많은 관계로 터키령 리비에라의 주요 관광 휴양지가 되었다. 부두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절벽 위에 있는 옛 도시는 로마·비잔틴·셀주크 시대에 개축되었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명한 유적으로는 한 때 등대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는 옛 탑과 1250년에 세워진 셀주크의 종교대학 겸 모스크가 있다.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였다가 셀주크 시대에는 모스크로 바뀐 이이블리미나레의 일부가 지금은 지역고고학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이곳에는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히타이트, 그리스·로마, 비잔틴, 투르크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안탈야; 인구150만,세계1차대전후엔 이태리 영토,년중300일이 맑은날로 지중해 3대휴양지중의하나,오랜지/바나나주산지
안탈야 해안의 서쪽 야경
안탈야 해안의 일출
크로즈업 해본 일출
안탈야 동쪽 해안
아침에 본 서쪽 해안
오전에 본 북쪽 설산
안탈야 대표공원인 카라알리오울루 공원
이 공원에도 서있는 초대 대통령인 아타투르크 동상
안탈야 상징인 이블리 미나레탑(이블리탑)
이블리탑 광장에서 본 안탈야 해안-정말 아름답다
17세기에 형성된 구 주택가
골목 전체가 관광객을 위한 노점상들이 진을 쳤다
3개의 아치와 4개의 고린도식 기둥으로 세워진 하드리안문
동로마 제국의 하드리안 왕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문 -- 같이간 후배 양치규-참좋은사람
같이간 여행 팀의 부산 멋쟁이 이여사 - 여성다움은 물론 인정많은 분
이블리 탑 - 이슬람 사원의 탑이 아니며, 연필 모양의 첨탑이 있으면 오스만 제국시 건축된 탑
너무 아름다워서
이블리 탑 공원이 참 아름다워 인정샷
아
안탈야의 크라운 프라자 호텔
호텔에서 본 북쪽산
카라알리 오울루 공원
종려나무
후배 양치규 장군
안탈랴 시내 모습
일출 햇빛을 받은 안탈야 북쪽의 설산
공원에 만들어져 있는 88올림픽의 상징 굴렁쇠 굴리는 소년
우리나라와 같이 공기놀이 하는 모습
안탈야를 뒤로하고 데니즈리의 파묵깔레로
넓은 들판을 지나
중간 평원지역의 휴게소
어딜가나 태극기가 휘날린다
지붕위의 태양열 집열판
비가 적고 태양열이 강렬하여 대부분의 집들이 태양열 난방을 한다
우리나라 시골과 너무 흡사하다
그 유명한 올리브 나무
처음엔 대추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2부 끝
3부로 간다